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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써먹기 좋은 지식

저항시인 김지하, 그는 누구인가? (타는 목마름으로)

by ◉∙⏎・❖•▶︎⁍ 2022.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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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을 쓴 김지하 시인이 향년 81세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저항시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던 김지하 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저항시인 김지하님이 안경을 쓰고 왼쪽을 바라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하

 

저항시인 김지하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한 끝에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토지문화재단 관계자가 이날 전했다.

1969년 시 황톳길을 발표하여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필명은 '지하'(地下)였는데, 이것이 굳어져 이름처럼 사용되면서 이름을 지하(芝河)라 하게 되었다.

 

김지하의 간단한 이력 소개

목포산정초등학교, 중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나왔다. 2008년부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로 있다가 2013년부터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했다.

1941년 전남 목포 출생인 김 시인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시 ‘황톳길’로 등단했다. ‘오적(五賊)’,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시를 발표했던 그는 군부독재 정권에 맞섰던 유신시대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불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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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유신 정권 당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0년 석방됐습니다.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으며,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상과 1981년 국제 시인회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김지하의 대표 작품과 수상 이력

대표작으로는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시와 산문집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2002년에는 제14회 정지용문학상을 시작으로 제10회 대산문학상, 제17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제11회 공초문학상을 받았다. 이 외에 2005년 제10회 시와 시학상 작품상, 2006년 제10회 만해대상, 2011년 제2회 민세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젊은시절 김자하님이 인터뷰를 하는 사진과 재판을 받는 사진
김지하 젊은시절

 

김자하의 작품 세계

70년대 유신시대를 대표하는 참여시인이었던 김지하는 80년대 이후, 그리스도교 사상과 불교의 미륵사상, 화엄사상, 유교, 선불교·기(氣) 철학 등의 여러 가지 사상들을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재해석하고 이를 모두 융합, 수용하여 생명사상을 제창했으며, 풍자력을 갖췄으면서도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담시와 서정시를 썼다. 대표작으로는 《오적》, 《새》, 《황톳길》, 《타는 목마름으로》 등이 있다.

 

김지하 님의 고문 후유 증설

1991년 김지하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굿판 칼럼'으로 운동권과 진보 진영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진보 진영에서도 여러 의견이 갈렸다. 그를 변절자라고 극렬히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가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보수 정권으로부터 어떠한 금전적인 이익을 취한 정황이 없기 때문에 변절자 라고 까지 매도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후 김지하의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설이 대두된다. 급기야는 너무 심한 고문으로 외모까지 확연히 달라졌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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